한때 전원주택 하면 으리으리한 저택만을 떠올리곤 했다. 상주자常住者가 많아야 서너 명임에도 연면적 198.3㎡(60.0평) 정도에 복층이 주류를 이뤘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상은 관리비와 유지비·보수비로 집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전원주택이 보편화를 이룬 지금은 과시형에서 실속형으로 바뀌어 132.0㎡(40.0평) 안팎이 많고, 도시에 사는 친인척을 맞기에 좀 비좁다 싶으면 33.1㎡(10.0평) 정도의 별채를 드리는 추세다. 전원주택의 천국이라 불리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전원주택을 10년 만에 두 번 지은 김인태·이향표 부부에게서 그 변화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은 1980년대부터 수도권 전원주택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여기에는 팔당호와 우산리 천진암계곡 등 수려한 자연 경관과 중부고속도로 경안나들목을 통해 30여 분이면 서울로 진출입이 가능한 접근성이 한몫을 한다. 이렇듯 빼어난 입지 여건에다 이름만 대도 고개를 끄덕이는 유명 탤런트와 정치인의 전원주택이 산재해 한때 프리미엄이 붙기까지 했다. 지금도 전 지역이 팔당호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1권역으로 묶여 개발 가능한 관리지역의 토지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퇴촌면 소재지 광동리에서 계곡을 따라 우리나라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이 자리한 우산리에 다다르면 개발을 마쳤거나 개발이 한창인 전원주택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산자락에 둥지를 튼 듯 동남향 660.0㎡(199.6평) 대지에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김인태·이향표 부부의 130.2㎡(39.4평) 단층 스틸하우스다.
청량한 기운을 발산하는 집
이 집의 대지는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뻗은 장방형인데 주 진입로에서 마당까지 고저 차가 약 7m 달해 첫 느낌은 다소 부담스러운 편이다. 이것을 상쇄시키고자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동선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하고 건축 형태와 외관은 서국식이되 본채와 사랑채 격인 별채를 단층 ‘ㄱ’자 한옥풍으로 배치해 예스럽다. 또한 진입로 좌우에 갖가지 수목과 화초를 심어 장원莊園처럼 꾸민 데다 청량한 기운을 발산하는 산자락에 주택이 점점이 들어선 형국이라 낯설음보다 정겨움이 배어난다.
건축주 김인태·이향표 부부는 10년 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은퇴하면서 퇴촌면 광동리에 198.4평(60.0평) 복층 철근콘크리트 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간혹 전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시로 유턴하기도 하는데 부부는 전원생활의 묘미에 푹 빠져 보다 깊은 산골을 찾았다고 한다. 인생 2막, 전원일기를 새롭게 쓰기 시작한 것이다. “면 소재지인 광동리에 발을 내딛고 7개월간 지루하고 답답해 자주 서울 집을 오갔어요. 그후 서울 집을 찾는 횟수가 뜸해지더니 그 집은 세를 주고 아예 발길을 뚝 끊게 되더라고요. 공기가 쾨쾨한 게 가슴이 답답한 데다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눈이 아팠으니까요. 서너 해 전원에서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맛을 느꼈는지 번잡하지 않은 호젓한 곳으로 욕심이 동했어요.”
광동리는 경안나들목과 가깝고 비교적 생활 및 기반시설도 잘 갖춰졌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전원의 맛이 덜하다. 반면 부부가 제2의 전원생활을 시작한 우산리는 그곳에서 8㎞ 남짓 떨어졌지만 산세山勢가 아름답고 계곡이 맑아 수도권 1일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집이 들어선 터에선 여름철 휴양객으로 북적대는 계곡에서 떨어진 산기슭이라 산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김인태 씨는 아내 이향표 씨가 건넨 본지本誌를 보고 신영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고 최길찬 건축사의 추천으로 건축 형태를 스틸하우스로 정했다고 한다.
“공동주택은 왠지 정이 가지 않아 서울과 광동리에 단독주택만 두 채 짓고 살았어요. 이 집이 세 번째인데 경험으로 볼 때 설계와 시공은 실적이 풍부하고 믿을 만한 곳에 맡겨야 후회하지 않아요. 인근 광주와 용인에는 신영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하고 ㈜하이랜드건설에서 시공한 주택이 많은데 서너 곳 방문해 보니 건축 형태가 다양하고 인테리어도 맘에 들었어요. 건축주들도 한결같이 최길찬 건축사라면 고집이 좀 세서 그렇지 사람이 진국이라 맡기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적극 추천하더라고요.”
김인태 씨는 나이가 있어 복잡한 것이 싫었기에 설계를 심플하게 요구했다. 이전에 살던 주택은 모두 복층인데, 이 집은 대지 여건을 감안한 최길찬 건축사의 권유로 단층으로 본채와 별채를 나눴다고 한다.
“복층에 살 때는 1층만 사용하고 2층은 친인척이 찾아와야 사용할까 말까 했어요. 그럼에도 2층까지 난방하고 청소하느라 헛되게 돈과 시간을 들였지요. 이 집은 본채와 서재 겸 손님방으로 별채로 채를 나눴는데 난방과 관리가 효율적인 데다 아들 내외와 손님들이 찾아올 때마다 별채가 마치 펜션 같다며 좋아들 해요.”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최길찬의 설계 노트 - 닫힌 듯 열린 공간
이 집은 진입로에서 마당까지 고저 차가 7m로 상당히 심했다. 건축주는 설계 당시 복층을 요구했으나 진입로-마당-주택 간의 고저 차를 감안할 때 동선에 부담이 너무 컸으므로 단층을 권했다. 주택 배치는 대지가 4필지로 이뤄진 해당 마을 끝에 위치해 뒤쪽 마을과 분리 또는 연결 등의 의미를 담았다. 마을 쪽으로 ㄱ자 형태를 가지면서(뒤쪽 마을과 분리) 본채와 별채 사이에 연결 통로를 둠으로써 뒤쪽 마을 사람과도 교류하도록 한 것이다. 한옥에서 사랑채를 통해 안채로 들어가는 즉, 뒤쪽 마을 사람이 이 건물의 본채와 별채 사이를 통해 앞마을로 진입하는 의미를 담았다. 닫혔어도 통로가 있는 형태의 집이다. 대지는 수려한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이를 고려해 건물 배치 모양에 따라 덱(Deck)을 두어 쉼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편안히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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